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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에게 - 단타 트레이더의 남편이 쓰는 편지
여보,
오늘도 아침부터 HTS 켜고 모니터 세 개 앞에 앉아있는 당신을 보며 이 편지를 씁니다. 커피도 식은 채로요.
먼저 고백할게요. 당신이 "오늘 30만원 벌었어!"라고 신나서 말할 때, 나도 같이 기뻤어요. 진심으로. 그런데 "어제 50만원 날렸어..."라고 한숨 쉴 때, 내 심장도 같이 떨어졌답니다.
자, 이제 진지하게 얘기해볼게요.
당신이 단타를 하면서 싸우는 상대가 누군지 아세요? 옆집 김 사장도 아니고, 동네 아줌마도 아니에요.
0.001초 만에 매수 버튼 누르는 로봇들이에요. 초당 수천 건 거래하는 컴퓨터 프로그램들. 그리고 수백억 굴리는 기관들.
우리 집사람은... 어제 라면 끓이다가 타이머 못 맞춰서 퍼먹은 그 사람인데... 이 친구들이랑 0.01초를 다투는 게임을 하고 계신 거예요. 😅
그리고 말이죠, 당신이 "지금이다!" 하고 매수 버튼 누를 때, 그게 왜 "지금"인지 한번 생각해봐요.
- 차트가 뾰족하게 올라가서? → 이미 늦었어요
- 뉴스 떴어? → 기관들은 3분 전에 다 샀어요
- 커뮤니티에서 난리야? → 그 사람들도 물린 사람들이에요
당신이 "오른다!" 싶을 때는 이미 프로들은 파는 중이랍니다.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에요.
수수료 이야기 좀 할게요. 하루에 다섯 번 사고팔면, 한 달이면 100번이잖아요? 매번 수수료 떼고, 세금 떼고...
이거 진짜 웃긴 게, 당신 손익률이 딱 0%여도(본전이어도), 실제로는 수백만원이 증발해 있어요. 증권사 직원들은 당신 덕분에 보너스 받고 있을걸요? ㅋㅋㅋ
그리고 이 부분이 제일 마음 아픈데요, 요새 당신 표정이 달라졌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핸드폰부터 보고,
밥 먹다가도 호가창 체크하고,
밤에 잠들기 전까지 "내일은 반드시..."라고 중얼거리고.
여보, 우리 그냥 평범하게 살아요.
당신이 매일 5만원씩 잃는 거, 나는 괜찮아요. 돈은 다시 벌면 돼요.
근데 당신이 웃는 얼굴 잃어버린 건... 그건 안 괜찮아요.
단타로 떼돈 번 사람 이야기? 그거 복권 당첨자 뉴스 보는 거랑 같아요. 살아남은 사람만 떠들어대는 거죠. 조용히 사라진 수천 명은 말 안 해요.
제안이 있어요.
- 지금 가진 주식, 일주일만 그냥 놔둬봐요. 매일 들여다보지 말고.
- 그 시간에 우리 같이 산책해요. 당신이 차트 보는 3시간이면 북한산 다녀올 수 있어요.
- 투자하고 싶으면 한 달에 한 번, 괜찮은 회사 주식 사서 1년 뒤에 봐요.
마지막으로, 당신은 단타 트레이더 안 해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에요.
요리도 잘하고(비록 가끔 라면은 태우지만), 웃는 모습도 예쁘고, 우리 집 최고의 재산이에요.
주식 시장은 당신 없어도 잘 돌아가요.
근데 나는... 당신 없으면 못 살아요. 진짜로.
그러니 제발, 단타 좀 그만해요.
우리 그냥 김밥 싸들고 피크닉 갈래요? 📦❤️
오늘따라 HTS 소리 없는 우리 집이 그리운,
당신을 사랑하는 남편 올림
P.S. 혹시 이 편지 읽고도 "그래도 한 번만 더..."라고 하면, 나도 단타 시작할 거예요. 당신 옆에서. 같이 망해요. 그게 더 나을 것 같아.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