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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8일, 이재명 대통령이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을 지명했습니다. 야당 출신을 파격 발탁한 것도 화제지만, 정가에서는 또 다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또 서울대 82학번이네." 이혜훈 장관 지명과 함께 다시 소환된 '똥파리 학번'의 어제와 오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똥파리 학번'의 탄생, 1982년 서울대

서울대 82학번은 특별합니다. 다른 학번과 달리 '똥파리'라는 독특한 별명으로 불리는데요. 그 이유는 숫자에 있습니다.

1981년, 전두환 정권의 7·30 조치로 본고사가 폐지되고 졸업정원제가 도입되면서 서울대에 초유의 정원 미달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1982년에는 입시제도를 개편하고 무려 졸업정원의 130%를 뽑았죠. 사상 유례없이 많은 신입생이 들어온 겁니다.

당시 선배들은 "어딜 가나 82학번들이 떠들어댄다"며 불평했다고 합니다. 강의실에도, MT에도, 술집에도 어디나 82학번들이 있었죠. 그래서 숫자 82를 그대로 발음해 '똥파리'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지만, 당시에는 정말 그만큼 숫자가 많았다는 뜻입니다.

특히 서울대 법대 82학번은 최상위권 학생들이 몰렸습니다. 1, 2, 3지망제 도입으로 최고 성적의 학생들은 대부분 1지망으로 법대를 선택했고, 그 결과 법대에 수재들이 대거 입학하게 됐죠. 이들 중 180여 명이 법조계로 진출했고, 나머지는 정계, 경제계, 학계 등 각 분야로 퍼져나갔습니다.

대학 시절, 그들은 누구였나

1982년 3월, 서울대 캠퍼스는 사복경찰이 상주하고 매일 데모가 끊이지 않던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 2주년이던 그해 5월, 학생들은 폭발했고, 서울대 82학번들은 이런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원희룡, 82학년도 대입학력고사 전국 수석으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수재 중 수재였습니다. 학생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고, 1992년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했죠. 나경원 의원은 회고록에서 "대학시절 원희룡이 참 애틋했다"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나경원은 '퀸카'였습니다. 예쁜 외모에 모범생 이미지로 조용히 사법고시를 준비했죠. 남편인 김재호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법대 82학번 동기입니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셈이죠. 당시 나경원이 정치인이 될 거라고 상상한 동기는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조국은 '입 큰 개구리'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1965년생으로 초등학교를 2년 일찍 들어가 17살에 서울대에 입학했죠. 나이가 어려서 동기들 사이에서 '아기'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나경원은 "조국이 그럴 줄은 몰랐다. 그땐 정말 아기로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원희룡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지만, 나경원의 표현에 따르면 "운동권 활동은 원희룡에 비할 바가 못 됐다"고 하네요.

이혜훈은 어땠을까요? 경제학과 82학번인 이혜훈은 법대 동기들과 달리 조용히 공부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같은 경제학과 동기인 강석훈 전 의원과 신입생 시절 스터디 그룹에서 함께 활동했다고 합니다. 이혜훈은 훗날 "강석훈이와 정치권에서 이렇게 만날 줄 몰랐다"고 회상했죠.

당시 82학번들은 유독 동기들끼리 잘 뭉쳤습니다. 지금까지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많게는 1년에 2~3번, 적어도 동기회를 통해 계속 만나고 있다고 합니다.

1986년, 졸업앨범에 담긴 맹세

서울대 법대 82학번의 졸업앨범 편집후기는 지금 읽어도 가슴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그 글을 쓴 사람은 바로 조국이었습니다.

"역사, 민중, 지식인… 우리는 격동의 한국현대사 속에서 이제 법대 학사모를 쓰게 되었다. 학우여! 이 학사모가 번쩍거리는 신분상승의 도구됨을 거부하자! 이 학사모는 민중의 권익옹호를 위한 무기이며, 마침내 다가올 정의롭고 해방된 이 땅을 위한 거름이어야 한다. 그리고 학우여! 4년 전 정의의 여신 앞에서 엄숙히 맹세했던 그 뜨거운 열정을 잊지 말자!"

조국은 훗날 이 글에 대해 "지금에 와서 보면 조금 생경하고 과격한 어투가 있을 수 있지만, 당시엔 어색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가졌던 시대적 고민과 사명감이 고스란히 담긴 글이죠.

그렇다면 4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맹세'는 어떻게 됐을까요?

2012년, 정치권에 본격 등장한 서울대 똥파리들

서울대 82학번이 정치권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12년 대선 때였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캠프에는 강석훈, 나경원, 조해진, 원희룡 등이 핵심 역할을 맡았습니다. 조국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측면 지원했고, 같은 경제학과 82학번인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안철수 후보의 경제정책을 전담했죠. 세 후보 캠프 모두에 82학번이 있었던 겁니다.

2008년 18대 국회에는 82학번 의원들이 무려 14명이나 당선됐습니다. 이혜훈은 "18대 국회에서 82학번 모임이 생겼다. 당시 나이 40대였으니 의원으로서는 다들 젊은 축에 속했다. 14명 정도가 모였던 걸로 기억한다. 굉장히 많은 수라서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시절 함께 했던 동기들은 정치권에서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2014년, 페이스북에서 만난 조국과 원희룡

2014년, 조국과 원희룡은 페이스북에서 공개 설전을 벌였습니다. 대학 시절 함께 학생운동을 했던 두 사람이었지만, 사회에 나와 정치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죠.

조국이 먼저 원희룡에게 "말이 통하는 대학 동기이기에 묻고 싶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시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갑자기 찬성으로 돌아선 이유를 물었습니다.

원희룡은 "존경하는 친구 조국으로부터 갑자기 공개 질문을 받으니 당황스럽다"며 "노 전 대통령 탄핵은 내가 정치하는 동안 가장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던 한 지점이다. 옛 친구들과 토론회를 하는 게 어떻겠나"라고 역제안했습니다.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원희룡은 보수로 전향했고, '주사파 대부'로 불렸던 김영환(법대 82학번)도 보수로 전향했습니다. 반면 조국은 운동권 경력을 중시하던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사가 됐죠.

2019년, '조국 사태'와 82학번의 엇갈린 운명

2019년 조국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서울대 82학번은 다시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열의 상징이 됐죠.

나경원은 페이스북에 "역대 최악의 민정수석실을 만들어 놓고, 마지막에는 철 지난 친일 프레임으로 온 사회를 분열시키고 스스로 편협과 낡음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버렸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송언석 의원(법대 82학번)도 "조국은 최악의 민정수석 역할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정부로 남는다면 그 실패의 주요인은 바로 조국 전 수석"이라고 말했습니다.

나경원은 나중에 회고록에서 조국에 대해 "당시 운동권이던 사람도 아니었다"며 "나를 포함해 오랫동안 대학을 함께 다니며 그를 막연히 '나이스한 동기' 정도로만 알았다"고 썼습니다. "조 원장 한 사람 때문에 온 나라가 두 패로 갈려 대치한 것이 기가 막힌다"는 강한 표현도 덧붙였죠.

한때 같은 캠퍼스에서 청춘을 보냈던 동기들이 이렇게 극렬하게 대립하게 된 겁니다.

2025년 12월 28일, 그들은 지금 어디에

그렇게 40년이 흘렀습니다. 1982년 입학한 그들은 2025년 현재 61세가 됐습니다. 서울대 82학번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조국은 가장 드라마틱한 여정을 거쳤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고, 2024년 3월 조국혁신당을 창당해 22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12석을 얻으며 제3당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러나 2024년 12월 자녀 입시비리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되며 의원직을 상실하고 구속됐죠.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2025년 8월 15일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출소했고, 11월 23일 전당대회에서 98.6%의 찬성률로 당대표에 재선출됐습니다. 현재 조국혁신당 당대표로서 2026년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원희룡은 윤석열 정부에서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냈지만, 2024년 22대 총선에서 인천 계양을에 출마해 이재명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 그의 정치 인생에서 처음 겪은 선거 패배였죠. 2025년 조기 대선에서는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선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지만, 이재명 후보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현재는 국민의힘 인천 계양구 을 당협위원장으로 재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경원은 5선 국회의원으로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역임했고, 2024년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지만 한동훈에게 패배했습니다. 현재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야당의 중진 의원으로 남아있습니다.

송언석은 2025년 6월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선출되어 야당의 원내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조해진은 전 국회의원으로, 과거 국회 정보위원장을 지냈습니다.

그 외에도 법대 82학번이 아닌 경제학과 82학번인 이혜훈이 2025년 12월 28일,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 후보자로 지명받았습니다.

이혜훈의 선택, 그리고 82학번의 의미

이혜훈의 장관 지명은 여러 의미에서 상징적입니다.

첫째, 진영을 넘어선 인사입니다. 보수 정당에서만 활동했던 이혜훈이 진보 성향의 이재명 정부에서 장관이 됐습니다. 조국이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이 된 것과는 정반대죠. 82학번들은 이제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각 정부에서 중용되고 있습니다.

둘째, 전문성이 이념을 이겼습니다. 이혜훈은 보수 진영 출신이지만 경제민주화, 최저임금법 개정, 이자제한법 개정 등 진보적 경제정책을 주장해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녀의 정치적 색깔보다 예산·재정 분야의 전문성을 높이 평가한 겁니다.

셋째, 82학번의 끈질긴 생명력입니다. 2012년부터 10년 넘게 정치권 요직을 차지해온 82학번들은 2025년에도 여전히 건재합니다. 앞으로도 최소 5~10년은 더 정치권의 중심에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똥파리들의 오늘, 그리고 내일

서울대 82학번 중에는 정치인만 있는 게 아닙니다.

경제학과 동기인 장하준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세계적인 경제학자가 됐습니다. 김난도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로 유명하죠. 은수미는 성남시장을 지냈고, 김상헌은 네이버 대표가 됐습니다. 법조계에는 180여 명이 판·검사,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고, 증권업계에도 여러 대표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1982년 서울대에 입학해 격동의 시대를 함께 보낸 동기들입니다. 어떤 이는 진보의 길을, 어떤 이는 보수의 길을 걸었지만,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한국 사회를 이끄는 핵심 인물이 됐습니다.

졸업앨범에 썼던 조국의 맹세, "이 학사모가 번쩍거리는 신분상승의 도구됨을 거부하자"는 얼마나 지켜졌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은 '신분상승'을 이뤘습니다. 장관, 국회의원, 대학교수, 대기업 임원… 누가 봐도 성공한 인생들이죠.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한국 사회를 위해 기여한 것도 사실입니다. 진보든 보수든, 정치든 경제든 학계든, 이들은 각자의 신념에 따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세대교체인가, 능력주의인가

이혜훈의 장관 지명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합니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586세대가 정치권을 장악하고 있구나"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젊은 세대에게 기회를 주고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분명 있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능력 있고 검증된 사람을 쓰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혜훈은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 전문성을 인정받는 인물입니다. 특히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는 더욱 그렇죠.

서울대 82학번, '똥파리 학번'의 전성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한국 정치에 기여하는 바가 있는지, 아니면 기성세대의 기득권 유지에 불과한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1982년 서울대 캠퍼스에서 만난 20대 청년들이 2025년 6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중심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혜훈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고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이 된다면, 82학번 동기들은 또 한 번 정가를 뜨겁게 달굴 겁니다. 어쩌면 청문회장에서 같은 동기인 조해진, 송기헌 의원이 질문을 던질지도 모릅니다.

40년 전 같은 캠퍼스를 거닐던 청춘들의 오늘과 내일, 우리는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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